2년차 디자이너, 갑자기 이직

2020. 10. 30. 18:38디자인에 관하여

  작년 2월부터 작은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UI/UX, 브랜딩, 웹디자인 전반을 경험했다. 내가 하는 디자인이 회사에 도움이 되고 구성원들과도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왔기에 회사와 직무에 크게 불만 없이 잘 지내왔었다. 입사한 지 1년쯤 되니 '나의 디자인 실력'에 대한 욕심이 생겨 스터디를 시작하긴 했다. 그렇다고 해서 '이직'을 계획하고 퇴사를 준비하는 단계까진 아니었다. 허나,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으로 모든 기업들이 크고 작은 타격을 입었다. 물론 내가 근무하는 작은 스타트업도 그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었다. 피해 가기는커녕, 직격탄을 맞았다. 하여, 갑자기 이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.


잊고 지냈던 포트폴리오

신입 시절 포트폴리오의 흑백 제본

 

  보통(?)의 디자이너라면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다듬고 보완한다. 나는 그 '보통'에 낄 수 없었다. 첫 직장 입사 후 2년 동안 포트폴리오는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. 갖고 있는 거라곤 신입 포지션으로 지원할 때 썼던 포트폴리오밖에 없었다.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신입 시절 사용했던 포트폴리오를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할만큼 안목과 실력이 늘었다. (그렇다고 생각...)

 

  퇴사 후 놀 생각은커녕, 곧바로 포트폴리오 공사에 착수했다. 내가 해왔던 작업들을 짜집어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싶었지만 전 직장에서 했던 일 이외에는 전혀 작업물이 없었다. (심지어 그 작업물도 문서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수집하고 정리해야했다.) 하여, 전 직장 작업물의 정리+개인작업으로 포트폴리오를 계획했다.


가진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자!

전 직장의 다양한 아웃풋의 작업물과 사용자 중심의 사고를 포트폴리오에 녹여내고자 했다.

 

  전 직장 작업물을 보니 조금 다듬으면 포트폴리오에 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 홈페이지나 굿즈 등 결과물만 있었기에 결과물 도출 과정과 인사이트를 담은 디벨롭먼트 시트는 새로 작성했다. 디자인을 맨땅에서 시작했던 나는 최소한의 디자인을 고집했고 꼭 개선해야 할 점들과 클라이언트(사용자)가 원하는 핵심 포인트를 캐치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. 또한 브랜딩, 웹 디자인, 편집 디자인, 프로토타입 등 다양한 디자인 아웃풋을 냈기에 이러한 점을 포트폴리오에 녹여내려고 했다.

 

  전 직장에서의 작업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분명 최선을 다했을 것이기 때문에, 잘 다듬고 장점이 부각되게 포트폴리오에 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. 실제로 이후 봤던 면접에서 다양한 아웃풋을 나의 장점으로 캐치해주었다. 예상 적중! 가진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자.


개인 프로젝트가 더 많아도 될까?

초반 작업물은 다 버려졌다. 퀄리티를 개선하기 위해 클래스와 유튜브, 아티클을 찾아다녔다.

 

   전 직장 작업물 이외에는 전부 개인 프로젝트로 채웠다. 내가 원하는 가상의 카페, 좋아하는 책, 아쉬움을 느꼈던 프로덕트 등 평소 나의 관심사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구성했다. 전 직장에서 익숙한 업무의 반복으로 인해 감을 잃었는지 처음 2개월 동안 진행했던 9~10개의 프로젝트는 퀄리티가 정말 안 좋았다. (그래서 다 버렸다.)

 

   언제까지 허공에 삽질만 할 수는 없었기에 클래스를 듣기로 했다. Kyulee Daniel님의 클래스를 들었는데 리서치부터 기획, 디벨롭 등 디자인적인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었고 다양한 실무적인 팁들을 배울 수 있었다. 포트폴리오 구성 중에 정말 답이 안나온다면 돈을 조금 들여서라도 클래스 들어보기를 추천한다. 정말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. (큐리님의 클래스 링크 > class101.app/e/bcSuxD2p09)

 

  아무튼, 4개월간 14~15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중 4개를 추려 포트폴리오에 담았다. '실제 작업물보다 가상의 개인 프로젝트가 더 많은 포트폴리오를 괜찮게 볼까?' 싶었는데 면접 때 대부분 좋게 봐주셨다. 당연한 말이지만, 개인 프로젝트를 떠나서 작업물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. (문제를 정의하는 것과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주고, 나만 가진 독특한 생각으로 구별성을 주자.)


아무튼 이직했다✨

   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급의 포트폴리오 준비 과정은 자존감 하락을 불러온다. '할 수 있을까?' '비전공 디자이너는 역시 무리인가?' 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. 준비되지 않은 경력 디자이너가 이직을 준비할 때, 아직 경험이 없는 신입 디자이너가 취직을 준비할 때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라 생각된다. 결과적으로 4개월 간 영혼을 갈아넣은 포트폴리오로 이직에 성공했다.

 

 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오겠지만 꾹꾹 누르자. 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용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. 정말 부족한 디자이너의 이직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:)